택시기사 하루 근무가 3시간30분? 대법원, 최저임금 회피 여부 다시 판단하라
택시회사가 노사 합의를 통해 하루 소정근로시간을 3시간30분으로 정한 것을 두고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실제 택시기사가 일하는 시간과 비교해 지나치게 짧은 소정근로시간을 설정했다면 최저임금 지급액을 줄이기 위한 탈법적인 방식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앞서 회사 측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택시기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 소송
대법원 3부는 울산지역 택시기사들이 소속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체불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소송을 제기한 기사들은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울산지역 일반택시 운송업체 A사에 입사해 근무했다.
갈등의 핵심은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서 정한 ‘소정근로시간’이었다.
A사는 여러 차례 임금협정을 체결하면서 하루 소정근로시간을 변경해왔다.

4시간이었던 근로시간, 3시간30분으로 단축
A사의 하루 소정근로시간은 2008년 당시 4시간이었다.
이후 2014년에는 3시간30분으로 줄어들었다.
2016년 다시 4시간으로 늘어났지만 2017년에는 또다시 3시간30분으로 축소됐다. 2019년 체결된 임금협정에서도 하루 3시간30분이라는 기준이 유지됐다.
택시기사들은 이러한 근로시간 변경이 실제 업무시간을 반영한 정상적인 조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회사가 최저임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금액을 줄이기 위해 서류상 근로시간을 짧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왜 ’30분’ 차이가 최저임금에 중요할까
이번 사건을 이해하려면 택시업계의 최저임금 계산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택시운전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법 특례에 따라 생산고에 따른 임금은 최저임금 충족 여부를 계산할 때 제외된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기준을 충족했는지 판단할 때 소정근로시간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소정근로시간이 짧아지면 최저임금 계산의 기준이 되는 시간도 감소한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근로자에게 보장해야 하는 최저임금 액수 역시 낮아질 수 있다.
택시기사들이 회사가 의도적으로 소정근로시간을 줄였다고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사들 “실제 근무는 훨씬 긴데 시간만 줄였다”
기사들은 하루에 실제로 일하는 시간과 임금협정에 적힌 3시간30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택시기사의 업무는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는 시간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영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시간이 필요하고, 승객을 기다리는 대기시간도 발생한다.
따라서 단순히 승객을 태우고 운전한 시간만을 기준으로 실제 근로시간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사들은 A사가 이러한 업무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최저임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축소했다며 부족한 임금을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에서는 회사 측이 승소
앞선 재판에서는 택시회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과거 임금협정을 통해 이뤄진 소정근로시간 조정에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 등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2008년 당시의 근로시간 단축은 경영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노사가 함께 선택한 결과라는 점 등이 고려됐다.
이에 따라 하급심에서는 택시기사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이 주목한 ‘하루 3시간30분’
대법원은 특히 2014년과 2017년, 2019년 임금협정에서 정한 하루 3시간30분의 소정근로시간을 문제 삼았다.
택시운전 근로자가 통상적으로 하루 동안 근무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3시간30분이라는 기준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실제 근로시간에는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는 영업시간뿐 아니라 운행을 준비하는 시간과 승객을 기다리는 시간 등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배차시간과 울산지역 택시기사들의 실제 운행 형태, 근무방식 등을 종합하면 서류상 정해진 3시간30분과 실제 업무시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사납금 마련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
대법원은 당시 택시요금이 인상되면서 기사들의 실제 근로시간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그럼에도 하루 3시간30분이라는 시간이 택시기사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인지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당시의 근무환경 등을 고려하면 3시간30분은 택시기사가 하루 사납금을 마련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으로 판단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형식적으로 노사가 합의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소정근로시간을 그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노사가 합의했다면 무조건 유효한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에서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노사 합의’ 자체보다 합의의 실질적인 목적과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와 근로자가 임금협정을 통해 특정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합의가 법에서 보장하는 최저임금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2014년과 2017년, 2019년에 이뤄진 하루 3시간30분의 소정근로시간 합의가 최저임금법 특례 적용을 피하기 위한 방식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실제 근무환경과 근로시간 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심 판결 파기…다시 재판받는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로 택시기사들이 청구한 금액을 곧바로 지급하라고 확정한 것은 아니다.
기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내 다시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소정근로시간 합의의 효력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리를 충분히 적용하지 못했고 필요한 심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파기환송심에서는 2014년 이후 체결된 임금협정의 소정근로시간이 실제 근무 형태와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 최저임금 적용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는지 등을 다시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근로시간과 지나치게 다르면 문제될 수 있어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하루 근로시간을 4시간에서 3시간30분으로 30분 줄였다는 데 있지 않다.
서류에 적힌 소정근로시간과 근로자가 현실적으로 일해야 하는 시간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근로시간을 줄인 결과 근로자가 받아야 할 최저임금까지 함께 낮아진다면 그 합의가 법의 취지를 회피하기 위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이 택시기사의 준비시간과 대기시간, 실제 운행 형태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파기환송 판결은 택시업계에서 소정근로시간을 정하는 방식뿐 아니라 최저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제 근무와 동떨어진 근로시간을 설정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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